히까닥한 아이디어 좀 없나? 

이말은 십 수년 동안 나에게 고문이었다.왜 공고를 해야 하는지,

이번 광고가 풀어야 할 문제는 무엇인지,

메시지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타깃은 누구인지 많은 문제들은 이 정체불명의 말 앞에서

오크족 앞의 호빗족만큼이나 무력한 존재였다.

때로는 선배가, 때로는 광고주가, 또 가끔은 동료나 후배가 던지는 이 말에

내가 할 수 있는 대응은 그저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멍청한 표정으로 웃어주는 일뿐이었다.

 

 

아직도 '히까닥'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 그분들은 분명 광고인이 아니거나 억세게 운이 좋은 광고인일 텐데 - 

그 뜻을 나름대로 정리해보자.

대강 "튀는" "엽기적인" "앞뒤 문맥에 상관없이

재미있는(여기서 '재미있는'이라는 말은 대체로 천박함을 동반한다)" 정도의 뜻이 될 것이다. 

"히까닥한 아이디어 좀 없나?"의 유사어로는 "희뜩한 아이디어 좀 없냐?"가 있다.

 

 

노골적으로 말해서 광고의 본질을 히까닥한 아이디어 찾기로 보는 사람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필시 광고를 말초적인 말장난 만들기나 눈에 띄는 그림 찾기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광고는 '끼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튀는' 아이디어를 찾는 과정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옳다면 나는 광고를 잘하기 위해 엽기적이고 튀는 책을 읽어야 할 것이다. 

히까닥한 아이디어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텔레비전의 개그 프로그램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런 일에 매우 서툴다. 

해서, 만약 그들의 생각이 옳다면 나는 당장 내가 잘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나는 히까닥과는 은하계 건너편에 있을 만큼 거리가 먼 책을 하나 읽었다. 

말이 하나지 무려 스물한 권짜리 대하소설, 박경리의 가 바로 그 책이다. 

벼르고 벼르다 지난해 가을에 시작, 올 초에 끝을 낸 것이다. 

'끼 있고 튀는' 말장난 하나 없고, 엽기적인 에피소드 하나 없는 책,

평소 좋은 구절이 나오면 줄치기를 잊지 않는 나같은 독자 입장에서 

그 긴 책을 읽는 동안 줄 칠 일이 별로 없었던 어찌 보면 밍밍한 이야기 책. 

그럼에도 내가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은 가 광고라는 일을 하고 있는

나의 기초체력이 되리라는 사실이다.

 

 

광고는 시대 읽기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일은

껌 광고에서부터 기업 광고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의 광고에 필수적이다.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광고는 공감대가 없고, 

공감대가 없는 광고는 존재 이유가 없다. (중략)

 

 

광고는 또한 사람 읽기다.

갓난아이부터 파파 할머니까지 모든 사람들의

바람과 현실, 희망과 절망을 가능한 한 많이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과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고 진솔한 대화가 있어야

그들의 마음은 열린다.광고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그래서 우는 타깃 분석에 그렇게 많은 시간과 땀을 투자하는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고 그때 보이는 것이 전과 같은 않은 존재다. (중략)

 

 

사회와 시대, 그리고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읽어 내기 위한 매우 고단하고도 진지한 작업, 

광고라는 전혀 히까닥하지 않는 그 일을 잘하기 위해, 

나는 지난 넉 달 간, 한 첩의 보약을 먹듯 를 읽었다.-

 

, 박웅현, 제일기획 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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